The Rareness of Patrick Michael Fitzgerald
A Solo Exhibition by Patrick Michael Fitzgerald
Oct 5 - Nov 24, 2023
Wed - Sat, 11am - 6pm
If we look back at our own history of looking at art, we might find a few or several important moments in our lives. Let’s call them “art moments.” They are the moments when you feel something so intensely that your life changes slightly(or immensely) right then. And there are “abstract art moments.” Obviously “art moments” can include “abstract art moments,” but “abstract art moments” do have their characteristics and consequences that are distinguished from other “art moments.” We tend to experience our first art moments when looking at figurative work. Then, we have these moments when we look at abstraction. Let’s say we look at a Cubist painting or Malevich’s square for the first time and feel confounded. They are different moments from when we feel awe looking at the grape paintings of Juan Fernández.
I had a few “abstract art moments” myself in my life. One of those moments was when I first looked at Cy Twombly’s. I was confounded and disturbed by his lines and forms being so a-formal, so completely free. Then these nearly non-forms evoked so much sensation in me. When I was staying in Umbria, Italy—it was about twenty years ago— for a summer residency; I had a copy of Roland Barthes with me. There was a chapter on Twombly’s art. In that essay, Barthes used the term “the Rare” in describing Twombly’s canvas. (“‘Rarus’ in Latin means that which has gaps or interstices, sparse, porous, scattered.”) The Rare Rectangle of Twombly, Barthes went on, carries two civilizations simultaneously; one is the void in Eastern art, the other the Mediterranean space of its skies and ocean.(Twombly was a famous American expat in Italy; he lived in several places in the Mediterranean and Rome) Coming from the Eastern culture, I thought I understood the void of Eastern art, and now I had to go see the Mediterranean equivalent. Instead of going to Firenze or Venice, I embarked on a long journey, without much hesitation, to one of the islands in the Bay of Naples to ambitiously witness the Mediterranean Rare.
Last April, I flew to Madrid-Bilbao, Spain, to visit Patrick Michael Fitzgerald’s studio. I had been looking at his paintings on Instagram before I finally decided to go there. It is probably a similar impulse that moved me to the Bay of Naples some twenty years ago. How can one understand one’s art without having some understanding of where it was made and how? And Fitzgerald’s painting had a sense of “the Rare,” though his “rareness” is quite different from Twombly’s. First of all, Fitzgerald’s canvases are never as big as Twombly’s. He only works on modest-sized canvases; little foreground forms in his paintings can never be spaced out like the ones in Twombly’s. Sometimes, his canvas is even packed with little dots or lines. Then why did I think the Rare or the sparseness in his painting reminded me of Twombly’s?
Patrick Michael Fitzgerald was born in Cork, the second largest city in Ireland, grew up in different places in the UK, went to Chelsea School of Art in London, and has lived for over 30 years in the outskirts of Bilbao.... Though Bilbao has been a destination for art people since the Guggenheim museum opened in 1997, it still feels like an odd place to be for a serious artist. He says he works in “relative isolation.” Though isolation is one of the very conditions of being an artist, his “relative isolation” rings a different tone because he lives in a small town in Spain, not an art capital or an exotic island, as an emigre.
Great artists are masters in living in isolation; on top of that, they are often exiles and emigres. When you are first “displaced” in a foreign place, you would feel literally uprooted. The profound sense of “nothingness” of your existence will be faced. Since you have no context, you might try to find any vestige of your root in yourself. As I was trying to think of Fitzgerald’s Irishness, his root, I was looking at the photos of Ireland he sent me(where I could recognize some colors and voids in his paintings); I scanned through Irish artists. I came all the way to Spain to meet this Irish artist, who seemed like a guy around the corner in Brooklyn. I couldn’t really pinpoint Fitzgerald’s Irishness in his work, as they often say it is hard to find it in Samuel Beckett’s work. In fact, Fitzgerald’s painting has the kind of “spareness” that you might find in Beckett’s. Beckett was an exile all his life, via London, and lived in Paris until the end. He was an outsider even in Ireland, being a protestant from a modestly affluent family in a Catholic and poor country. When you read a part like this from a story called Lessness(1969), look at the use of words, and hear the sound of it, you might find a connection between these two exiles.
Scattered ruins same grey as the sand ash grey true refuge. Four square all light sheer white blank planes all gone from mind. Never was but grey air timeless no sound figment the passing light. No sound no stir ash grey sky mirrored earth mirrored sky. Never but this changelessness dream the passing hour.
Fitzgerald’s work defies the conventional structure of painting or painted objects, following its own rhythm and sound, never attempting to deliver a “great” agenda. The forms in his painting seem never quite certain about their existence, hovering and searching in unknown space. There are often many layers of painted and erased forms. Their role appears to be about asserting “less,” as if it would make them exist more. Hugh Kenner once said of Beckett, “He is the non-maestro, the anti-virtuoso, habitué of non-form and anti-matter….” Going against what James Joyce was about, “knowing everything,” Beckett intentionally chose to be “not knowing.” I wonder if Fitzgerald ever carries as much intention as Beckett.
Fitzgerald’s studio was in a little town called Zalla, where we went by bus from Bilbao. Bilbao is a port city in the Basque Country in Northern Spain, situated in a low altitude surrounded by mountains. From Bilbao to Zalla, we passed the mountainous area with a great vista of green and skies. The hills were not high but rocky, which made me feel precarious as if we were driving on the narrow edge of something. I was in his studio looking around, thinking his studio felt more settled than anybody’s home in that town, and at the same time, felt like “nowhere”independent from the world outside. And it was the perfect place to recall the great observation by Terry Eagleton in Exiles and Emigre(1970).
Great art is produced not from the simple availability of an alternative but from the subtle and involuted tensions between the remembered and the real, the potential and the actual, integration and dispossession, exile and involvement.
Mimi Park
우리 각자의 예술 감상의 역사를 되돌아본다면 몇몇 중요한 순간들이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이를 “예술 모멘트”라고 부르기로 하자. 예술 작품 앞에서 뭔가 강렬하게 느껴서 인생이 살짝 (또는 엄청나게) 바뀐 순간을 말한다. 여기엔 “추상예술 모멘트"도 있을 것이다. 물론 예술 모멘트에 추상예술 모멘트가 포함될 수 있지만, 추상예술 모멘트는 다른 예술 모멘트와는 구별되는 특징과 결과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주로 구상예술을 보며 예술 모멘트를 처음 경험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 다음 추상예술을 보며 그런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 예를 들어, 입체파의 그림이나 말레비치의 사각형을 처음 보았을 때 혼란스러움을 느꼈다고 하자. 이는 후안 페르난데스Juan Fernández의포도 그림을 보고 경외감을 느낄 때와는 다른 종류의 순간이다.
내 삶에도 “추상예술 모멘트"가 몇 번 있었다. 그 중 하나가 사이 톰블리의 작품을 처음 본 순간이었다. 그의 선과 형태가 거의 몰형식적이고 완전히 자유로워서 당황스럽고 혼란스러웠다. 그런데 거의 마구잡이 형태가 나에게 많은 감각을 불러일으키니 더 난감했다. 약 20년 전 여름 레지던시를 위해 이탈리아 움브리아에 머물렀을 때 나는 롤랑 바르트의 책을 읽고 있었다. 그 책에는 톰블리의 예술에 관한 챕터가 있었는데,그 에세이에서 바르트는 톰블리의 그림을 설명하며 '희박'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라루스'는 라틴어로 틈이나 틈새가 있는 것, 드문드문한 것, 다공성인 것, 흩어져 있는 것을 의미한다.”) 바르트는 톰블리의 “희박한 화면”은 두 가지 문명을 동시에 담고 있는데, 하나는 동양 미술의 여백이고 다른 하나는 지중해의 하늘과 바다라는 공간이라고 했다. (톰블리는 이탈리아에 거주한 유명 미국인이었고, 지중해와 로마의 여러 곳에서 살았다.) 동양 문화권 출신으로서 나는 동양 미술의 여백을 이해한다고 생각했고, 이제 지중해의 허공을 보러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피렌체나 베네치아로 가는 대신 지중해의 희박함을 야심차게 목격하기 위해 나는 서슴지 않고 나폴리만의 섬으로 긴 여정을 떠났었다.
지난 4월, 나는 패트릭 마이클 피츠제럴드의 스튜디오 방문을 위해 스페인의 마드리드와 빌바오로 날아갔다. 오랫동안 인스타그램으로 그의 그림을 보다가 결국 작업실 방문을 결정한 것이다. 20여 년 전 나폴리 만으로 갔을 때와 비슷한 이유였을 것이다. 예술 작품이 어디서 만들어졌는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어느 정도의 이해 없이 어떻게 예술을 이해할 수 있을까? 피츠제럴드의 그림에선 바르트가 말했던“희박함”이 느껴지지만, 이는 톰블리의 그것과는 상당히 다르다. 우선 피츠제럴드의 캔버스는 톰블리만큼 크지 않다. 그는 대체로 소박한 크기의 그림을 그리고, 그의 그림 속 작은 형태들은 톰블리의 그림처럼 넉넉한 여백을 둘 수 없다. 심지어 그의 캔버스는 때로 작은 점이나 선으로 가득 차 있다. 그렇다면 왜 나는 그의 그림이 톰블리의 “희박함”을 연상시킨다고 생각했을까?
피츠제럴드는 아일랜드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인 코크에서 태어나 영국으로 이주, 대부분 영국에서 성장했다. 런던 첼시스쿨오브아트에서 미술을 공부했고, 현재는 스페인 빌바오 외곽에서 30년 넘게 거주하며 작업하고 있다. 빌바오는 1997년 구겐하임 미술관이 개관한 이래 예술인들의 목적지가 되었지만, 진지한 예술가가 살기엔 여전히 애매한 곳으로 느껴진다. 피츠제럴드는 자신이 "상대적 고립” 속에서 작업한다고 말한다. 고립은 예술가의 삶의 조건 중 하나이지만, 그가 예술의 수도나 이국적인 섬이 아닌, 스페인의 작은 마을에서 그것도 이민자로서 살고 있기 때문에 그의 “상대적 고립”은 다른 울림을 지닌다.
훌륭한 예술가들은 고립된 생활의 달인이고, 이에 더하여 망명자이자 이민자인 경우가 많다. 처음 낯선 곳에 “이식”되면 말 그대로 뿌리가 뽑힌 듯한 느낌을 받는다. 자신의 존재에 대한 심오한 “아무 것도 아님'에 직면하게 된다. 아무런 맥락이 없기 때문에 자신의 출신에 대한 어떤 흔적이라도 찾으려고 노력할 것이다. 피츠제럴드의 “아일랜드적 성향”, 즉 그의 기원을 생각하면서 그가 보내준 아일랜드 사진을 보고,(실제로 그의 그림의 색채, 비어있음이 보였다) 아일랜드 출신 예술가들을 떠올려 보았다. 스페인에 살고 있는 아일랜드 인을 만나러 여기까지 왔는데 그는 브룩클린에서 만나게 되는 여느 아티스트와 비슷했다. 사무엘 베케트의 작품에서 아일랜드적인 면을 찾기 어렵다는 말을 하는데, 피츠제럴드의 작업에서 역시 그랬다. 사실 피츠제럴드의 그림에선 베케트의 작품에서의 “공허함”이 느껴진다. 베케트는 평생 런던을 거쳐 파리로 망명했고, 마지막까지 파리에서 살았다. 가톨릭 국가이자 가난한 나라에서 적당히 부유한 집안의 개신교 신자였던 그는 모국 아일랜드에서도 이방인이었다. “덜함Lessness(1969)”라는 단편 속 이런 부분을 읽고, 사용된 단어를 보고, 이 단어들의 소리를 들어보면 이 두 망명자 사이의 연관성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모래 재 회색 같은 회색의 흩어진 폐허가 진정한 피난처. 네 개의 정사각형 모두 밝은 순백의 빈 평면이 모두 기억에서 사라지다. 지나가는 빛은 회색 공기와 소리 없는 영원한 시간뿐. 소리 없고 흔들림 없는 잿빛 회색 하늘은 땅을 비추고 하늘을 비춘다. 이 변화없음만이 지나가는 시간을 꿈꾼다.
피츠제럴드의 작품은 회화나 회화적 대상의 전통적인 구조를 거부하고, 그 자체의 리듬과 소리를 따르며 대단한 메시지를 전달하려 하지 않는다. 그의 그림 속 형태는 스스로의 존재에 대해 확신을 갖지 않고, 미지의 공간에서 부유하고 탐색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림 속 형태는 그리고 지워지며 여러 겹을 이룬다. 그의 그림 속 형태들은 뭔가를 “덜” 주장하기 위한 것 같다. 그렇게 함으로써 “더" 존재할 수 있다는 듯이.… 휴 케너는 베케트에 대해 "그는 비-마에스트로, 반-거장, 비형식과 반물질 세상의 거주자......"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제임스 조이스가"모든 것을 아는 것”을 지향했다면, 베케트는 그에 반하여 의도적으로 "알지 못하는 것"을 선택했다. 나는 피츠제럴드도 베케트만큼 그런 의도를 가지고 있었는지 궁금해진다.
피츠제럴드의 작업실은 잘라라는 작은 마을에 있었고, 우리는 빌바오에서 그곳까지 버스를 타고 갔다. 빌바오는 스페인 북부에 있는 항구 도시로, 저지대에 위치하고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빌바오에서 잘라까지 가는 동안 산악지대를 지나며 푸른 하늘과 멋진 풍경을 볼 수 있었다. 산은 높지는 않았지만 바위가 많아 마치 벼랑 끝을 달리는 듯 위태로운 기분이 들었다. 나는 그의 작업실을 둘러보면서 그곳이 잘라에 있는 어느 집보다 안정된 느낌이 들면서도, 동시에 바깥 세상과 무관한, 장소성이 없는 곳처럼 느껴졌다. 동시에 테리 이글턴이 <망명자와 이민자>(1970)에서 했던 훌륭한 관찰을 떠올리기에 완벽한 장소였다.
“위대한 예술은 단순히 대안을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기억된 것과 현실, 잠재적인 것과 실재, 통합과 제외, 망명과 참여 사이의 미묘하고 얽힌 긴장 속에서 만들어진다.”
박상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