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 de Deux

Paul Pagk

2 March-15 April 2022

Thomas Park is pleased to announce our inaugural exhibition at the new location on Itaewon in Seoul, Pas de Deux, Paul Pagk's first solo exhibition with the gallery. It is a unique survey of his mid-sized paintings made between 2004 and 2017. This exhibition is also his first solo exhibition in South Korea and in Asia. It will be on view from March 2 to April 15.

In Paul Pagk's Chinatown studio in NY, I began to notice something which felt like a discovery. More often than not, two forms, or potentially two forms appear to be interacting with each other in his mid-sized paintings (20-26 x 20-26"). It could be two full forms; one form is hovering over the other which is similar but not quite identical. Or while one full form is around the center, half of the same form emerges from the edge of the canvas. Or three forms connect together in a way that they appear to merge into two or less. It happens within this mid-sized format more often than in his large-format paintings that are vertically stacked like a row of books in his studio. If his large paintings are full performances done with labor and intentions, these paintings are akin to chance dialogues. Or small dance pieces where two people dance. In fact, in all of his paintings, regardless of their size, the forms appear to be engaged in some sort of movement.

Artists often work with polarities, two seemingly opposite, even contradictory concepts: figuration and abstraction, form and color, formalness and narrative, stillness and movement. Paul Pagk's works are known for their paradoxical quality, especially for being both geometric and organic simultaneously. Also, his works are so much about space in the most formal sense, but his space draws awareness to one's own physical body in actual space. While his paintings follow the logic of drawing, as you see (or read) the lines on the plain surface, he is a kind of painter who makes his own paints and invents his own, unnamable colors.

The other day I received in my mailbox, Edwin's Tao, Edwin Denby's translation of Tao Te Ching. It was surprising to see that it was like a booklet printed at FedEx Office. Denby made his own choice from the very first word he used; he used the word It in place of Tao. I loved what he did even more in chapter 2 where Lao Tzu actually talks about duality, the wisdom of perceiving it in real life. This is the kind of translation that we would come across in various translations of the book.

Being and non-being create each other.

Difficult and easy support (complement) each other.

Long and short define (shape) each other.

High and low depend on (rest on) each other.

Voice and tone harmonize (blend) each other.

Before and after follow each other.

And here is Edwin Denby's version.

Being and Not Being beget each other,

Heavy and Light crown each other,

Long and Short point at each other,

High and Low turn each other,

Tone and Sound lift each other,

Before and After follow each other.

This, for sure, is the dance critic's version of Tao Te Ching. Do you see how much movement is in his translation? Those words he used to describe the relationships between two opposite concepts sound like dance moves. By using these words, he might have wanted to imply what Art really does in human life. And it also reminded me of Paul Pagk's paintings. I often wonder if I see movement within his paintings due to my knowledge that he used to practice ballet.

Or perhaps it is what follows his past experience as a dancer; he naturally uses his body to perceive and perform on a picture plane. In my mind, as soon as I juxtaposed those words—beget, crown, point, turn, lift, follow—with Paul Pagk's work, everything suddenly made more sense.

Having been exposed to the Asian culture from his early years (his best friend in his 20's was the late Korean painter Hyun Soo Choi, they used to play Go and talked about Taoism. And his wife is French-Vietnamese), Pagk seems to physically understand the wisdom of embracing dualities. Asian thought is based on organic interactions and dynamic dualities, like the dynamics of Yin and Yang (I-Ching) or Being and Not Being (Tao Te Ching). Paul Pagk may be utilizing this foundation of thinking, without even consciously knowing it, and literally, philosophically moving in his work. Roland Barthes used the concept of the Rare which can be translated as Ma (間) in Japan, to discuss Cy Twombly's art; the in-between spaces of the marks and stains in his paintings. Pollock understood and practiced the concept of forgetting oneself (沒我) in the act of painting. This is how his act of making became the painting itself. Paul Pagk's embodiment of the movement he experienced as a dancer, a thinker, and a painter feels never-ending as one learns how the world works in Edwin's Tao "High and Low turn each other, Tone and Sound lift each other, Before and After follow each other."

Mimi Park

토마스 파크가 이태원로에 새로운 공간을 연다. 그 첫 번째 전시는 뉴욕에서 활동하는 작가 폴 팩의 전시다. 토마스 파크와 함께 하는 그의 첫 번째 전시인 《빠 드 두(Pas de Deux)》는 2004년에서 2017년 사이에 제작된 중간 사이즈 작품들을 독특하게 살펴본 전시다. 이 전시는 폴 팩의 한국, 그리고 아시아 최초의 개인전이기도 하다.

뉴욕 차이나타운에 있는 폴 팩의 작업실에서 시간을 보내던 중 나는 뭔가 눈치채기 시작했는데, 그건 작은 발견에 가까웠다. 그의 중간 크기의 그림들에서 두 개의 형태, 또는 잠재적인 두 개의 형태로 이루어진 구성이 자주 눈에 띈 것이다. 이런 식이었다. 두 개의 완성된 형태가 있는 경우, 예를 들어 하나의 형태가 다른 형태 위에 떠 있는데, 두 형태는 비슷하지만 약간 다르다. 아니면 하나의 형태가 그림 중앙에 있고, 그 형태의 반쪽이 캔버스의 끝에서 나타나고 있는 경우. 아니면 세 개의 형태가 이어져 곧 두 개가 될 것 같은 느낌을 준다거나 하는 식 등이다. 이런 경향의 발견은 흥미로웠는데, 왜냐면 그의 작업실에 가지런히 세워놓은 작업에 비하면 훨씬 작은, 이 중간 크기 작업에서 이 특성이 더욱 두드러졌기 때문이다. 그의 큰 작업이 오랜 작업 시간과 의도가 들어간 퍼포먼스 같은 것이라면, 그의 작은 그림들은 일종의 우연한 대화에 가깝다. 아니면 두 사람이 추는 작은 무용 작업 같았다. 실제로, 크기와 관계없이 그의 모든 작업에선 어떤 종류의 움직임이 느껴진다.

예술가들은 종종 상반되거나 모순되는 두 극단의 개념 사이에서 작업한다. 구상과 추상, 형태와 색, 형식과 서사, 부동과 움직임…. 폴 팩의 작업 또한 기하학적인 동시에 유기적인 형태를 보이는 역설적인 측면으로 잘 알려져 있다. 또한 그의 그림은 가장 형식적인 의미에서 공간에 관한 것인데, 그의 그림 앞에 서 있다 보면 갑자기 현실 속에 서 있는 나의 '물리적인' 몸에 대해 인식하게 된다. 그의 그림은 기본적으로 드로잉의 논리를 따르지만, 그는 또한 페인트를 직접 섞어 만들고, 그만의 이름 붙일 수 없는 색을 만들어내는, 색채에 민감한 화가이기도 하다. 며칠 전 나는 우편으로 《에드윈의 도(Edwin's Tao)》를 받았다. 무용평론가인 에드윈 덴비가 번역한 도덕경이다. 그동안 그렇게 기다리던 책이 마치 복사가게에서 만든 허접한 복사물 같은 것이 놀라웠다. 그가 선택한 첫 번째 단어부터가 달랐다. 그는 '도'라는 말 대신 '그것(It)'이라는 부정대명사를 사용했다. 2장 번역은 더욱 흥미로웠다. 2장에서 노자는 아름다움과 추함, 선과 악 등의 두 극단의 개념들에 대해 말하는데, 결국 일상에서 우리가 나누는 양극단의 개념을 바라보는 지혜를 알려준다. 그러한 개념들은 우리 머릿속에서 만들어지는 상일 뿐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보통 접하는 번역은 최진석 교수의 번역을 참고하여 다음과 같다.

"유와 무는 서로 살게 하고

어려움과 쉬움은 서로 이뤄주고

길고 짧음은 서로 비교하고

높고 낮음은 서로 기울며

음과 성은 서로 조화를 이루고

앞과 뒤는 서로 따르니"

에드윈 덴비의 버전은 다음과 같다.

"유와 무는 서로를 낳고(Beget)

무거움과 가벼움은 서로를 올려주며(Crown)

길고 짧음은 서로를 가리키며(Point)

높고 낮음은 서로를 돌리며(Turn)

음과 성은 서로를 들어주며(Lift)

전과 후는 서로를 따라간다(Follow)."

이건 분명 무용 비평가의 번역이라는 걸 느낄 수 있다. 얼마나 많은 움직임이 느껴지는지! 올리고, 포인트하고, 턴하고, 들어 올리고…. 덴비는 이 단어들을 도덕경에서 양극단 개념들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한 사용한 단어들의 번역어로 사용한 것이다. 자의적인 선택이었다는 느낌이 있지만, 그는 이 단어들을 사용하면서 예술이라는 게 인간의 문화에서 하는 일을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의 번역은 또한 폴 팩의 그림들을 연상시켰다. 나는 폴 팩의 그림들을 보면서 그가 전에 발레를 했다는 사실을 내가 알고 있어서 이런 움직임이 느껴지는 건가 할 때가 있었다. 아니면 그가 발레를 했기에 그 결과로 자연스럽게 몸을 써 화면을 지각하는 것이라 볼 수도 있었다. 내가 머릿속에서 이 단어들 — 낳고, 올리고, 포인트하고, 돌리고, 들고, 따라가고 — 을 그의 그림 위에 겹쳐 보았을 때, 모든 것이 순간 더 분명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폴 팩은 일찍부터 동양의 문화를 접할 기회가 있었기에(그가 20대일 때 그의 절친은 작고한 한국의 화가 최현수이다. 이들은 작업실에서 함께 바둑을 두고 도교 사상에 관해 이야기 했다. 또 폴 팩의 부인은 베트남 계 프랑스인이다.) 동양의 역설에 대한 이해가 체화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동양의 사상은 음과 양(주역), 유와 무(도덕경) 같은 두 개의 역설적인 개념을 축으로해서 그 역학관계와 운동성을 밝히는 데 주력하는데, 폴 팩은 아마 무의식적으로 이러한 사상에 영향을 받아 그의 작업 속에서 '움직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바르트는 일본에서는 '마(間)'라고 번역되는 '희박(Rare)'이라는 개념을 사용해 사이 톰블리의 작품 세계의 측면, 즉 그의 그림 속에서 붓 자국과 흔적 사이에 존재하는 여백을 설명했다. 폴록은 '몰아(沒我)'의 개념을 이해하고 작업에 적용하였다. 그럼으로써 작업 과정의 액션 자체가 그의 그림이 되었다. 폴 팩의 체화된 움직임들, 즉 그가 발레를 하고, 그림을 그리고, 사고를 하는 사람으로서 경험한 것을 체화한 운동성은 영원히 계속될 것 같은 종류이다. 에드윈의 도덕경 2장에서 느낄 수 있듯이 말이다. "높고 낮음은 서로를 돌리며, 음과 성은 서로를 들어주며, 전과 후는 서로를 따라간다."

박상미